문신 이서구의 업적

이서구(1754~1825)는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였습니다. 영조 시기 때 태어나 정조 시기 때 활약한 문신으로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많은 존경과 사랑을 받았는데, 학문이 뛰어나 여러 벼슬을 역임하며 홍문관 교리와 한성부 판윤을 거쳐 우의정까지 오른 인물입니다. 특히, 그는 전라도에 40대 초반과 60대 후반에 걸쳐 전라관찰사를 두 번이나 부임했는데, 그 때문인지 전라도 지방에는 유독 이서구와 관련된 설화와 전설들이 많이 전해집니다.

 

조선시대 500년 동안 수많은 전라관찰사가 다녀갔지만, 이서구처럼 흥미진진한 예언을 남긴 인물은 없었는데, 그에 관한 설화로 고창 선운사의 마애블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서구에 관한 설화

선운사의 마애불 복장

선운사는 전라북도 고창군 선운산에 있는 사찰로 6세기 후반 백제 위덕왕 24년 때 검단선사가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한창 번창하던 시절에는 89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3000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는데, 지금은 4개의 암자만 남아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암자는 도솔암으로, 그 외편의 암벽에는 마애불이 조각되어 있는데, 높이가 15.7m나 되고 무릎 폭이 8.5m나 되는 거대 불상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위덕왕이 검단선사에게 부탁하여 암벽에 불상을 새겼다고 하는데, 이 마애불에는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선 문신 이서구의 놀라운 예언
마애불 좌상

불상을 만들 때에는 가슴에 금은보화와 귀한 책들을 넣는 복장을 만드는데, 선운사 마애불의 복장에는 검단선사가 비결을 숨겨놓았다고 합니다. 그것이 나오면 조선이 망하는데 비결과 함께 벼락살도 들어 있어서 거기에 손을 대는 사람은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1820년 전라관찰사로 있던 이서구가 강렬한 호기심에 이끌려 마애불의 복장을 열어보니 과연 그 속에는 책이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서구는 그 첫 장을 펼쳐보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는데, 그 순간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책을 다시 집어넣고는 줄행랑을 쳤다고 합니다. 

전라감사 이서구 개탁(開坼)
  

그 책의 첫 장에는 '전라관찰사 이서구가 열어본다'라고 적혀있었다고 합니다. 세월이 흘러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892년의 어느 날, 전봉준, 김개남과 더불어 동학농민운동을 주도했던 손화중의 집에서 그 비결을 꺼내보자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세상을 바꿀 비결이니 응당 손에 넣어야 한다는 구실이었습니다. 모두들 벼락살을 걱정했지만, 오하영이라는 도인이 이서구가 열었을 때 이미 벼락이 쳤으므로 벼락살은 없어졌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동학도들은 석불 복장을 깨고 비결을 꺼내갔는데, 당시 항간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비결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이조 500년 후에 미륵석불의 복장을 여는 자가 있을 것이며, 그 비기가 나오면 세상이 망할 것이요. 그러한 후에 다시 흥할 것이다.

동학도가 천지개벽의 비결을 입수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동학도의 수가 급격히 불어나게 되었는데, 이에 위기감을 느낀 조선 조정이 청나라군의 파병을 요청하게 되고, 뒤이어 일본군까지 들어왔고 일제강점기에 들어서게 되며 조선은 망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당시 마애불의 비결을 꺼낸 현장에 있었던 동학도 오지영이 쓴 동학사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현재 마애불의 복장은 하얀 석회로 메워져 있으며 실제로 그곳에서 동학도들이 비결을 꺼내갔는지, 그 내용이 어떠하였는지 등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습니다. 

해태상의 기운

그리고 이서구가 세운 해태상에 관한 설화도 전해집니다. 현재 남원 광한루에는 해태상이 있는데, 이 해태상은 원래 남원 사거리에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서구가 남원에 와서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남원에 불이 많이 나는 이유는 호두산(虎頭山)이 호랑이 형국을 하고 있어서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서는 사거리에 해태상을 세워 놓고
산 이름을 개 견(犬) 자를 써서 견두산(頭山)으로 해라.

이 말대로 행하니, 신기하게도 그 후 화재가 사라졌다고 합니다. 이처럼 전라도 지역에는 이서구와 관련된 설화들이 수십 종류가 전해져 내려오는데, 이서구는 역학, 풍수지리, 천문에도 조예가 깊었으며 이를 통해 여러 가지 예언을 남긴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조선 문신 이서구의 놀라운 예언
문신 이서구

이서구가 남긴 예언

이서구는 특이한 예언이나 기행을 많이 남긴 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서구가 남긴 예언 중에서 몇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어느 도령의 관상

이서구가 젊은 시절 한양에 있을 때였습니다. 이서구는 길을 걷다가 한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나이가 어려 보이는 도령이었는데, 그는 나귀에 책을 가득 싣고 산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열흘 후, 이서구가 그 길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지난번에 봤던 그 도령을 또 마주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도령은 지난번과는 반대로 나귀에 책을 가득 싣고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이서구는 궁금증이 들어 도령에게 책을 싣고 어디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도령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책을 절에 가져가서 읽고, 다시 돌려주러 가는 길입니다." 그러자 이서구는 다시 물었습니다. "나귀에 실은 책은 무엇이냐?" 도령은 "강목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도령의 대답에 이서구는 깜짝 놀랐습니다. 강목이란 중국 역사서인데 무려 59권에 이르며, 그 내용을 모두 이해하며 읽기에는 상당히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그런데 도령은 책을 싣고 산을 올라간 지 열흘 만에, 다시 책을 싣고 내려오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이서구: 강목을 열흘 만에 다 읽었다는 말인가?
도령: 네, 그렇습니다.

이서구는 이 도령이 책을 정말 읽었는지 이것저것 물어보게 되는데, 도령은 책을 아예 다 외우는 수준으로 막힘없이 대답하는 것이 아닌가. 크게 놀란 이서구는 도령의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그가 관상을 살펴보니, 도령은 학문으로 높이 이름을 떨치게 될 인물로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의 운세가 심히 사나울 듯 보였다고 합니다. 이서구가 이름을 물어보니, 그 도령은 정약용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약용은 뛰어난 학문과 능력으로 후세에까지 널리 알려진 인물입니다. 하지만 무려 18년에 이르는 유배생활을 하게 되는 등 평탄치 못한 삶을 살았습니다. 이서구가 관상을 보고 예언한 대로였습니다. 

한벽루의 터널

전라북도 전주에는 한벽루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한벽루는 돌로 된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 아래로는 냇물이 흐르고 있어 경치가 빼어난 곳입니다. 어느 날, 이서구는 한벽루에 와서 경치를 바라보며 서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뜻밖의 예언을 남겼습니다. 

이 한벽루 옆으로 불말이 지나다닐 것이다.

불말은 불로 된 말을 의미하는데, 당시 사람들은 그가 남긴 예언의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일제강점기에 이곳에 터널이 뚫리면서 한벽루 옆으로 기차가 지나다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벽루 옆에 한벽터널이 생긴 것이죠. 이 터널은 1931년에 개통되어 1981년까지 기차가 다녔던 곳입니다. 이서구가 말한 불말은 바로 기차를 말한 것으로 보입니다. 

서해안의 융기 Vs 새만금 방조제

이서구의 예언 중에서 가장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이 있습니다. 그는 전라북도의 서해안 지방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수저(水底) 30장(丈) 이요, 지고(地高) 30장(丈) 이 될 것이다.

이는 '물은 30장 아래로 내려가고, 땅은 30장 위로 올라온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약 1장은 3m로 30장이면 90m 정도가 됩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러 부안과 군산에 이르는 지역에 대대적인 간척사업이 시행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새만금 방조제 지역입니다. 새만금 방조제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이 간척사업으로 인해 서울시 면적의 2/3에 해당하는 엄청난 면적의 육지가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이서구의 예언이 실현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부에서는 다른 의견을 내놓습니다. 그들은 이것이 단순히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한 것이 아니라 거대한 지각 변동에 대한 예언으로 해석합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유는 이서구가 말한 '30장'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30장이면 약 90m입니다. 그런데 건설된 새만금 방조제의 높이는 약 36m이며, 가장 높은 곳이라도 54m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안쪽에 있는 땅의 높이는 방조제보다 낮습니다. 그렇다면 이는 이서구가 말한 높이 30장에 크게 못 미치는 높이입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이서구가 말한 예언이 미래에 벌어질 거대한 지각변동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을 하는 이들은 다른 예언가들이 남긴 서해안에 대한 예언을 함께 언급합니다. 그중에서 특히 탄허 스님이 남긴 '극 이동 예언'이 대표적입니다. 

탄허스님은 극이 이동하면서 지축의 각도가 변화하고, 이로 인해 엄청난 지각변동이 동반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탄허 스님은 이를 통해 동쪽은 가라앉고 서쪽이 올라오는 식으로 변하기 때문에 우리나라 땅은 서해안 쪽으로 융기해 약 2배 이상의 땅이 생긴다고 예언했습니다. 그래서 일부에선 탄허 스님과 이서구의 예언이 결국 같은 미래를 나타낸다고 보고 있습니다. 조선 시대의 뛰어난 학자이자 어진 관리였던 이서구가 남긴 이 예언이 실현된 것인지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를 나타내는지 지켜볼 일입니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이상으로 내용 정리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구독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