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 괴산 증평읍 사곡리 사청마을, 이곳에는 아주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습니다. 정식 명칭은 증평 사곡리 우물이며 충청북도 기념물 143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크기는 일반 우물의 1.5배 정도로 큰 편이고 수심은 약 3m 정도입니다. 우물은 가뭄이나 장마철에 관계없이 늘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며 겨울에는 물이 따뜻하고 여름에는 물이 찬 것이 특징입니다. 이 마을에서는 1년에 두 번 정월대보름과 칠월칠석을 전후에 우물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성껏 제를 올립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때 마을과 나라의 평안을 기원합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이 또 하나 기원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물이 넘치는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기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왜 그런 것을 비는 것일까요? 증평 사곡리 우물에 얽힌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조선 초기,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폐위시킨 뒤 단종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 조선에서는 몇 년째 심한 가뭄이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1456년 경 여름, 오랜 가뭄에 더위까지 기승을 부렸고 이 때문에 한낮이면 사람은 물론 짐승들도 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이 지금의 충청북도 사곡리의 사청 마을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뜨거운 날씨에 갈증은 점점 심해졌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스님은 마을에서 우물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스님은 마을의 한 집을 찾아갔습니다.

 
스님: 주인 계십니까? 지나가는 객승인데, 목이 말라 그러니 물 한 그릇 얻어 마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집안에서 주인 아낙이 나왔습니다. 헌데 아낙은 길어다 놓은 물이 다 떨어지고 없다며 물동이를 이고 나섰습니다. 
아낙: 스님, 대청마루에 앉아서 쉬고 계십시오. 제가 물을 길어 오겠습니다. 
그렇게 아낙이 나간 후, 스님은 대청마루에 앉아 한숨 돌렸습니다. 그런데 물을 길으러 간 아낙은 좀처럼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스님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갈 수도 없어 몇 시간이 지나도록 아낙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야 아낙이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낙은 땀을 뻘뻘 흘리며 이고 온 무거운 물동이를 내려놓았습니다. 
아낙: 스님, 오래 기다리셨지요? 
아낙은 스님에게 물을 떠 주었습니다. 스님은 물을 받아 시원하게 마신 다음, 아낙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잘 마셨습니다. 그런데 샘이 무척이나 멀리 있나 봅니다.
그러자 아낙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낙: 스님, 이 마을에는 샘이 없습니다. 이 물은 여기서 10리(약 4Km)쯤 떨어진 개울가에 가서 길어 온 물입니다. 가뭄 때문에 마을 근처의 물은 모두 말라버렸습니다. 

스님은 처음 보는 자신을 위해 그 먼 곳까지 가서 물을 떠다 준 아낙의 마음에 크게 감복했습니다. 그리고는 이내 자신이 짚고 온 지팡이를 들어 마당의 땅을 세 번 두들겨 보았습니다.

스님: 과연 이 마을은 물이 귀하겠습니다. 마을의 땅이 층층이 암반으로 덮여 있으니...
스님의 말에 아낙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자 스님은 곧 아낙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님: 걱정 마십시오. 내 주인아주머니의 마음에 보답하는 뜻으로 좋은 우물 하나를 선사하고 가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스님은 그 집을 나와 마을의 구석구석을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낙과 함께 도중에 만난 몇몇의 마을 청년들도 호기심에 차서 그 뒤를 따랐습니다. 동네 한복판에 다다른 스님은 지팡이를 들어 세 번을 두들겨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스님: 이곳을 파십시오. 
하지만 스님의 말을 들은 마을 청년들의 표정은 일그러졌습니다. 스님이 가리킨 땅은 거대한 바위로 이루어진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청년들: 스님, 여기는 바위가 아닙니까? 물이 나올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서 여기를 파십시오. 겨울이면 더운물이 솟아 나올 것이오, 여름이면 냉차 같은 시원한 물이 나올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날이 가물어도 마르지 않을 것이며, 심한 장마에도 물이 넘치지 않을 것입니다. 

스님의 말에서는 묘한 힘이 느껴졌습니다. 그러자 마을 청년들은 스님의 말을 믿고 바위를 파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닷새쯤 파냈을 때, 드디어 바위 틈새에서 물이 솟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맑고 깨끗한 물이 콸콸 흘러나와 지금까지 깊이 파낸 곳을 가득 채웠습니다. 청년들은 너무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췄고, 소문을 듣고 온 마을 사람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가뭄에 시달리며 10리 밖까지 물을 길어 다니던 마을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샘이나 다름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냥 기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님은 엄숙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습니다.

앞으로 이 우물은 가뭄이나 홍수에도 넘치거나 줄어드는 일이 없을 겁니다. 그러나 만약 이 우물이 넘치는 날에는 나라에 큰 변고가 있을 것입니다. 

마을 사람들은 스님의 말을 듣고 놀라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갑자기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우물이 세 번째 넘치면, 이 세상은 말세가 될 겁니다. 그때 여러분은 이 마을을 떠나십시오. 

스님은 이 말을 마지막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떠나버렸습니다. 그 후 이 우물이 세 번 넘치면 말세가 온다는 소문은 멀리까지 퍼져 나갔고, 우물은 말세 우물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물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채, 어느덧 세월은 백여 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에 물을 길어 우물에 갔던 사람이 깜짝 놀라 기절을 하고 말았습니다. 우물의 물이 철철 넘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로부터 며칠 후, 조선에 왜구가 쳐들어왔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592년에 벌어진 임진왜란이었습니다. 그 후 우물은 다시 잠잠한 채로 사백여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런데 1910년 정월 중순에 두 번째로 우물이 넘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우물이 넘친 그 해, 우리 민족은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는 경술국치를 겪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물은 지금까지 두 번 넘쳤습니다. 스님은 세 번째로 우물이 넘치면 말세, 즉 세상의 끝이 다가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950년 6월 24일, 다시 한번 우물의 물이 불어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때는 우물이 넘치지 않았지만, 늘 일정량을 유지하던 우물이 높이 차올랐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날, 한반도에서는 6.25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 후 우물이 넘치지는 않았지만, 물이 불어난 적이 또 한 번 있었습니다. 바로 1995년 11월입니다. 하지만 이때는 우물이 무슨 일을 알리려고 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국가의 위기라고 할만한 사건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물의 힘을 믿는 사람들은 이 즈음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어떤 위험이 우리나라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라의 위기를 알려주고, 세 번째로 넘치면 말세임을 알려준다는 신비한 우물. 마을 사람들은 여전히 이 우물을 귀하게 여기면서 우물이 세 번째로 넘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여건이 되신다면 한 번쯤 가보시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이상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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